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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한국어 및 독서논술코칭수업일지

성빈이의 마음을 감정 빙고로 어루만지다

by 친친유나 2023. 2. 12.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성빈이와의 한글코칭 화상수업 풍경. 주3회 30분씩 zoom 화상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나서 국어 수업을 했다. 어휘와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감정 단어 빙고 활동을 했는데, 성빈이가 즐거워했던 게 기억난다.

초등학교 1학년 성빈이

수업 풍경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용호동에 살았던 성빈이와 온라인으로 했던 자료를 보았다. 당시 성빈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는 한글을 다 마스터하지 못하여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성빈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담임 선생님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다. 처음 이 학생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기 훨씬 전, 그의 형까지 함께 형제 수업을 의뢰받아 만나게 된 것이다. 직접 만나 주 1회 1시간 수업을 하다가 셋째 동생이 아프면서 할 수 없이 1년 가까이 수업을 쉬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성빈이가 학교에서 한글도 다 익히지 못했다고 반 친구들 앞에서 공개망신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 담임 선생님은 성빈이의 어머니께 '아직도 이 학생은 한글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아무리 바쁘셔도 아이를 챙겨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부모가 바빠도 그렇죠!' 이렇게 추궁을 하셨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당연히 자식 때문에 그녀 스스로 혼난다고 생각하여 크게 스트레스를 받으시다가 오래 망설인 끝에 나에게 다시 수업을 맡기셨다. "선생님, 우리 성빈이 바보 아니잖아요? 당신도 아시잖아요? 글자를 다 익히지 못했다고 성빈이가 바보 소리를 들어야 하나요? 저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성빈이가 당신과 수업할 때 편안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연락드린 거예요. 제발 우리 아들 좀 잘 봐주세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직접 방문은 어려워서 화상수업방식을 택하여 1년 넘게 진행했었다. 위에 올린 사진은 한글 어휘와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감정 단어 빙고 활동을 한 흔적들이다.

감정 빙고 활동

성빈이는 삼 형제 중 둘째이다. 위로는 2살 많은 형이 있고, 아래로는 5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 각자 성숙 해졌겠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성빈이는 귀엽고 감성이 잘 발달한 학생이었다. 이때의 학부모님께 보내는 피드백을 읽어보니 나는 무엇 때문에 성빈이의 기분이 안 좋았는지 잘 모르겠다. (아! 내가 다시 읽어보니 이 학생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글 수업을 화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게 내심 불만이었던 것이다. '내가 방학 때 왜 국어 공부를 해야 해?'라는 표정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내가 본 삼 형제는 늘 우당탕탕 소란스러웠다. 그들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보였고 특히 첫째 아이는 까칠하고 무례했던 기억이 있다. 처음 첫째 형을 봤을 때 나를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해서 정말 속이 뒤집어졌던 것도 기억이 난다. 성빈이 어머니의 평가처럼 나도 첫째 아이보다는 둘째 성빈이가 훨씬 좋았다. 지금 삼 형제를 만나도 둘째 아이를 더 반가워하게 될 것 같다. 아마 수업한 이 날도 무슨 일이 있었을 걸로 추측이 되는데, 성빈이의 컨디션을 살피면서 이 빙고활동 파일을 업로드했었다. 내가 지금도 느끼는 것이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를 끄는 수업 활동은 대략 <끝말잇기>, <가로세로 낱말퍼즐>, <Bingo>이다. 이 활동들은 학생들이 재밌게 공부할 수 있게끔 효과적으로 돕는 장점이 있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감정 빙고 활동 워크시트를 보여주었더니 그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빙고도 하고 한글 글자도 읽으며 즐겁게 임했다. 보다시피 위쪽은 성빈이가, 아래쪽은 내가 맡아서 공개적인 빙고를 했다. 아마 가위바위보를 해서 누가 먼저 할 것인지 정하는 우선순위를 내가 그에게 맡겼을 것이다. 한글에는 받침도 많이 들어가니 그는 이때만 해도 받침 발음이 좀 어눌했었다. 그래도 그는 최선을 다해 읽으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내가 이때를 떠올려보면 특정 단어에 대한 성빈이의 질문은 받지 않았던 것 같다. 거의 그의 생활 속 대화에서 이미 들어봤을 법한 단어들일 테니까 말이다.

성빈이의 마음 어루만지기

아침부터 온라인 수업에 접속하기 위해 방학 동안만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늦잠을 포기해야 하니 오전에 접속하는 학생의 표정은 별로 좋은 적이 없었다.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그가 오후 늦게 접속하면 하루를 마감하는 시점에 더욱더 피곤해서 아침보다 힘들어질 텐데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에게 오전이 힘들더라도 빨리 마치는 것이니 차라리 나은 것이다. 성빈이와 그의 첫째 형 성윤이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 영재다. 전국 대회를 휩쓸 만큼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서랍장에는 스케치북 등등 각종 미술도구들이 가득했다. 예체능은 타고난 재능과 함께 창의성이 부족하면 한계가 나타나는 분야다. 똑똑해야 하고 다방면으로 폭이 넓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미술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면으로 그 자신을 표현해야 하니 성빈이가 바보 같다는 그 담임 선생님의 말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그래도 이 학생의 감정 탄력성이 좋은 편인지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가족들도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심성도 가지고 있다. 물론 감성적인 면도 빼놓을 수 없다. 어쨌든 매너는 부족했지만 감정 빙고 활동으로 성빈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니 그의 표정이 풀어졌다. 나는 자주는 아니지만 그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어떤 때는 수업은 제쳐두고 깊이 상담할 때도 있었다. 코칭을 하면서 지나치게 학생의 기분을 맞추진 않지만,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 억지로 수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추후의 효과를 위해서 말을 들어준다. 이것도 코칭의 일환이다. 지금은 운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운동선수로의 진로도 함께 모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최근에 오랜만에 그의 어머니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수업을 쉬는 동안 많은 성장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술도 잘하는 학생이 운동에도 소질을 보인다고 하니 나는 그가 더없이 멋지게 성장할 거라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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