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애틀 학생 지호
처음에는 서울로부터 연락을 받아서 나는 한글 공부를 화상으로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후에 미국에서 이루어질 수업도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화상수업 횟수치고는 너무 많은 주 3회 50분이라는 수업시간을 보고 부담도 함께 느꼈다. '왜 이렇게 타이트하지? 상담자에게 횟수를 줄여달라고 부탁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과 온라인으로 소통을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어쨌든 의뢰는 받았으니까 화상 애플리케이션으로 남학생과 만났는데, 그의 어머니께서 내가 서울에 사는 줄 착각하셨나 보다. 한 달 동안 서울에 머무를 때 학생의 집에 직접 와서 수업을 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계셨다. 내가 부산에 산다는 걸 들으신 학생의 어머니께서는 너무 아쉽지만, 내 인상이 좋아서 꼭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씀을 남기신 채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다. 나도 인연이 아니겠지 하면서 거의 잊고 살았었는데, 그녀는 2022년 7월 초에 내 개인 메신저로 연락을 주셨다. 주 1회 1시간이지만 학생과 함께 그의 어머니께서도 같이 수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셨다. 나를 좋게 생각해 주신 학생의 어머니께 지금도 매우 감사함을 느낀다. 그 아이와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나와 수업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기본부터 하는 중
이 학생의 이름은 '지호'이다. 한국 나이로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지만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의 옆에 반드시 한글 탐구를 도와주는 도우미가 있어야 한다. 더 깊이 말하기 그렇지만, 그는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수업 때는 꼭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번갈아가며 참석하신다. 이 아이에게 1시간이란 시간은 유난히 길 것으로 짐작이 된다. 나는 옆에서 지호의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 스스로 절대 수업을 이어나가지 못할 것 같다. 그런 실력도 통제력도 없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 나오는 사진은 한글의 기본자음인 <기역, 니은, 디귿>을 수업한 것이다. 한글은 모양 글자는 아니지만 나는 그의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기역을 책상다리로, 니은을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으로, 디귿을 네모난 가구에 비유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먼저 한글의 구성부터 언급했다. 글자의 초성은 머리, 중성은 몸, 종성(받침)은 다리라고 말이다. 한글은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나의 가르침이 들어가 있다. 내가 그에게 이렇게 알려줘도 지호는 다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듣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나는 최대한 한국어를 쓰려고 노력한다. 기본 자음을 배우기 전 기본 모음인 '아, 어, 오, 우, 으, 이'부터 그에게 가르쳤다. 내가 따로 갖고 있는 기본 모음 PDF 파일을 보여주며 가 글자부터 하 글자까지 무수한 반복을 시켰다. 지호에게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하니까 나는 알파벳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주 차례대로 보여주며 읽게 하다가 어느 순간 랜덤으로 자음 페이지들을 바꾸는데, 지호에게는 이게 스트레스가 되는지 옆사람에게 살짝 짜증 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지호에게는 힘든가 보다. 나는 이 사실을 아주 잘 알지만 모든 글자가 차례대로만 쓰여 있지 않기에 보통의 상황에 대비하라고 훈련시키는 의도도 들어 있다. 그의 부모님이 옆에서 도와주시니까 지호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없지만, 끝없이 반복하며 모른다고 칭얼대던 그가 요즘 좀 글자를 구분하며 읽기 시작했다. 같이 공부하다가 함께 환호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다양하게 학습 및 탐구
아무리 해도 이 아이의 한글 학습 실력이 너무 늘지 않아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이 답답함은 이루 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는 큰 고비를 넘고 지호의 아버지께서 새롭게 제안해주신 수업 방식을 참고한 후로 나도 많이 좋아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지호가 사는 미국은 영어를 쓰는 나라이다 보니 한국어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그의 부모님과 대화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이런 그에게 나는 한국의 유명한 전래동화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결과, 소년은 리틀챔피언 교재 한 권을 수업 시간에 잘 끝내며 복습 효과도 경험하게 되었다. 마치기 5~10분 전, 나는 한국인들에게도 생소한 동화 영상을 틀어주는데 그의 부모님께서 정말 성심성의껏 통역을 해주신다. 아이가 혹여나 이해를 못 할까 봐, 때로는 그의 요청에 따라 나는 영상을 일시정지하고 이야기에 대한 반응도 보고 들을 수 있다. 최근에는 '구렁덩덩 신선비' 동화를 보았는데, 구렁이가 영어로 big snake라고 내가 알려주니까 지호가 갑자기 나에게 그의 관심사인 뱀 인형을 보여주며 즐겁게 웃었다. 나도 열심히 반응했고 그가 재밌어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한글 학습 실력이 점점 늘기를 정말로 바란다. 요즘 나의 하루일과는 여기저기서 영어와 서울말이 들리는 것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 분명 부산에 사는데, 호주인 가정을 만나고 내가 영어를 쓰고 서울 표준어를 더 많이 들으니 개인적으로 참 신기하다. 정말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대로 '온라인 글로벌 스타 코치'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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