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놀이 중에 즐긴 것
이때 아마 8회 차 수업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부산대 후문 쪽에 거주하는 윤지는 올해 초등 2학년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소녀와 내가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1년 가까이 되어가려고 한다. 작년 7월 중순쯤에 알게 되었으니까 오늘까지 계수해 보면 대략 7개월 정도이다. 그녀의 어머니께서는 주 2회 45분씩 수업해 달라고 내게 의뢰하셨고 이것은 지금까지 지켜져오고 있다. 45분이면 초등학교 수업 진행시간과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오래 집중하기 힘든 초등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제일 적합한 수업 시간이다. 아직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도 주 2회 1시간을 수업을 받기도 한다. 대체로 집중력이 좋거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글을 다 익히지 못하여 그들의 부모님 마음이 매우 급한 경우라고 보면 된다. 윤지는 이중 모음과 겹받침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초등 1학년이면 흔히 겪는 어려움이어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께도 윤지의 학업상태를 그렇게 심각하게 말씀드리지 않았다. 소녀는 실제로 심각한 학습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윤지가 저 날만큼은 무슨 기분 나쁜 이유가 있었는지 유난히 공부를 하기 싫어했다. 이때가 8회 차이고 한 달을 4주로 잡았을 때 우리는 총 8번 수업을 하는 것인데, 이때가 한 달의 마지막 회차여서 아이가 더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그녀는 학교를 마치면 각 학원들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 4시 정도에 집에 왔었다. 그녀는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컸던지 배뇨 장애를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배뇨 장애는 소변이 마렵지 않은데도 화장실을 계속 찾는 것을 뜻한다. 지금 내가 얼핏 기억하는 것은 그녀가 음악학원, 미술학원, 영어학원을 주로 다녔다는 것이다. 특히 윤지가 그렇게 하기 싫었던 것은 음악과 미술 학원에 가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음악과 미술 학원에서는 앉아서 펜을 드는 것보다 악기나 스케치북 앞에서 정확한 자세를 잡아 반복적으로 연습을 해야 하는 게 많았기 때문에, 그녀가 이런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께 영어 학원은 다니겠다고 의사 표명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윤지는 지금 영어 학원 외에는 다니는 곳이 없다고 하고, 다른 학원을 끊어내면서 배뇨 장애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한다.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국어 수업 중에 서로 역할을 바꾸어 나는 학생, 윤지가 선생님을 하기로 했다. 평소엔 내가 윤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그녀는 이날 유난히 여러 인형을 갖고 와서 학교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의 보조에 맞추어 내가 학생을 하니까 신분이 바뀌어진 역할놀이에 소녀는 매우 즐거워했다. 우리가 역할놀이 중에 즐긴 것은 서로의 신분이 바뀐 것이었다. 윤지는 그녀 스스로 선생님이 된 것이 무척 재밌는 모양이었다.
'듣고 쓰기' 20문제
앞에서 말했듯 윤지는 선생님, 나는 학생이 되었다. 한 달의 마지막 회차이기도 하고 평소에 정해져 있던 교재로만 공부하다가 이때는 함께 책 읽기도 하는 등 자유롭게 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윤지랑도 잘 얘기가 되었고 그녀가 한창 배뇨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때라 마음이 상해 있는 그녀를 잘 다독여야만 했다. 마음이 안정된 그녀는 곧장 자기 방으로 뛰어가 여러 종류의 부드러운 인형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자기가 선생님이니까 수업을 들어줄 인형 학생들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윤지가 제일 좋아하는 유튜버 '흔한 남매'가 있다. 이 유튜버는 '흔한 남매' 이름으로 초등학생들에게 친숙한 여러 분야로 학습만화책들을 출간할 정도로 스타 유튜버다. 윤지는 자유 시간에 이 책들을 보거나 '흔한 남매'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이 취향들을 존중하여 나는 한 달의 마지막 회차인 8회 차 때에는 그들이 펴낸 학습만화책을 그녀와 같이 보기로 했다. 오히려 이 책을 읽는 활동이 평소의 국어공부보다 훨씬 더 유익하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의 상식들과 언어생활에 도움 되는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내가 오히려 배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할놀이를 하는 중이므로, 나는 학생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선생님 역할을 맡은 윤지에게 '듣고 쓰기' 테스트를 해달라고 졸랐다. 소녀는 이 상황이 재밌었는지 즐겁게 웃으면서 '알았어. 그럼 내가 문제를 출제할 텐데, 몇 문제를 원해?' 하며 학습만화책을 펴는 것이다. 진짜 학생 윤지는 평소 수업 때 '듣고 쓰기' 10문제 정도를 수행했으니까, 가짜 학생이 된 나는 20문제를 하겠다고 답했다. 그리하여 20문제 출제가 시작되고 나는 내가 그녀를 위해 만들어준 바인더 여백 종이에 20문제 '듣고 쓰기'를 하였다. 사진에 보이는 20문제의 내용은 '흔한 남매' 유튜버가 펴낸 책의 각 챕터별 소제목들이다. 이 책이 보통 두께여도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인지 소제목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테스트를 치를 때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다. 윤지가 불러주고 나는 바로 그대로 듣고 적는 활동을 하면서, 그녀는 이런 이색적인 활동이 꽤나 흥미로웠나 보다. 이후의 내용은 다음 단락에 이어서 작성하도록 하겠다.
테스트
학생 역할을 맡은 나는 정말 얼마만의 '듣고 쓰기' 테스트를 하는 건지 개인적으로 힐링을 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언제나 지도하는 자리에 있었지, 역할놀이는 어린 윤지뿐만 아니라 성인인 나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윤지가 20문제까지 듣고 쓰기를 할 일은 없었고, 대신 내가 20문제의 답을 쓰고 있으니 그것도 좋았던 것 같다. 사진을 보며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너무 빨리 써서 내 필체가 그렇게 예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게 아쉽다.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서 그렇게 바쁜 게 없었는데, 바인더 여백 종이이고 정식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가짐에서 출발을 하여 필체가 저런가 후회가 든다. 원래는 더 잘 쓰는데, 예쁜 글씨체로 남겨둘걸 생각이 들지만 남들은 이 글씨체조차도 훌륭하다고 말해준다. 앞으로 수업에서 내 글씨체를 많이 보여야 할 때는 더 신경을 써야겠다. 이렇게 테스트를 마치니 윤지가 나의 답안지를 매기며 무려 '1,000점'을 주었다. 내가 그렇게 어려운 것을 수행한 게 아니었는데도 그녀는 지적으로 더 뛰어난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채점과 점수 주기가 많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한테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배뇨 장애로 고생했던 그녀는 지금은 완치하여 마음 편하게 나와 수업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날의 수업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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