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필과 원고지 코너
내가 속한 회사에서 제공하는 '코칭논술'이라는 교재가 있다. 이 교재의 내용 중에서 '연필과 원고지' 코너는 국어 문법과 글쓰기를 점검하게 도와준다. 입사 이래로 계속 수업을 해왔기 때문에 내 USB에는 모아둔 자료가 꽤 많다. 그중 2년 전 1월에 했던 우영과의 온라인 논술 수업 자료를 올려본다. 이때 왜 온라인으로 수업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 때문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우영의 가족 중 누구 한 명이 심하게 아파서 그의 어머니께서 나에게 당분간 컴퓨터에 접속하여 수업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던 것 같다. 같이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이 '연필과 원고지 코너'부터 펼쳤다. 컴퓨터에 접속하여 글쓰기부터 시작하는 것은 서로에게 다소 부담이 되고 시간이 금방 지나가서 이때는 적절하지 않았다. 우영은 나의 오랜 장기 회원이다. 그가 초등 1학년이 됐을 때 처음 만났고, 점점 여러 장르의 글쓰기와 국어 공부를 거치면서 소년은 지금도 단단하게 성장해 가는 중이다. 이제까지 직접 만나 수업을 했기 때문에, zoom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는 것은 그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터넷 환경도 불안정했던 그때, 어쨌든 간단하게 글쓰기의 첫 시작은 열었다. 주어진 문장을 보고 '언제, 어디에서' 중에 무엇이 빠졌는지 찾아서 동그라미 표를 하고 두 번째 활동은 '무슨 일을 했는지'까지 덧붙여 더 상세하게 문장을 고쳐 써보는 것이다.
글 쓰는 힘
우리가 '연필과 원고지 코너'를 펼치니 주어진 문장을 보고 '언제, 어디에서' 중에 무엇이 빠졌는지가 나온다. 이 '코칭논술' 교재는 1단계에서 두 번째 호수에 해당하는 책으로, 많이 쉬운 편이다. 우영은 다른 초등학생들만큼 바쁘지 않은 학생이다. 이 아이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거의 비슷하고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한데, 그의 부모님은 소년 안의 빛나는 재능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갈고닦을 기회를 별로 제공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학교 마치면 음악학원, 수학 학원 등 그들의 부족한 학업을 보충하느라고 너무 바쁘다. 내가 학생들을 보며 가장 바쁘다고 느꼈던 경우는 저녁식사를 제때 못해서 나와의 수업 중에 꼬마김밥을 우걱우걱 먹은 남학생도 있었다. 그가 얼마나 시간이 없으면 식탁에서 그의 속도대로 편하게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다음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어찌나 아등바등하는지 안쓰러움을 느꼈던 나의 경험을 여기에 남기는 것이다. 우영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시간도 매우 많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방과 후 활동 외에는 경험하는 것이 없어서 외출도 잘하지 않는 소년이다. 그러니 내가 교재를 선택할 때, 아무래도 그를 배려하기 위해 한 단계 낮은 교재로 진도를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1단계는 초등 1, 2학년에게 맞추어진 글쓰기 입문인데 당시 우영은 초등 3학년이었다. 그의 학년에 맞추려면 2단계의 초중반 진도로 설정해서 진행했어야 했지만 그가 버거워할 것 같고 이때만 해도 맞춤법 정립이 덜 되어서 내가 낮춘 것이다.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우영이가 낮은 단계에 불만을 품지 않고 차근차근 성실하게 수업을 받은 것이다. 이 교재로 나와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는데, 글쓰기 할 시간이 다가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몸을 베베 꼬며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우영은 잔꾀 부리지 않고 나와 글쓰기 인터뷰를 진행하며 글감 선정부터 원고지 작성까지 했으니 다른 아이들보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속마음은 정말 피하고 싶었을지라도 나는 그가 수업 때 표시 내지 않고 세부적으로 생각하면서 진중하게 글을 쓴 것 자체가 정말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그는 글 쓰는 힘을 차곡차곡 길러갔다.
길러봄
지금 그는 당연히 나와 높은 레벨의 교재로 수업을 받고 있다. 소년이 5학년이 됐으니 나는 3단계 교재 진도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 중이다. 우리는 2019년 9월 말에 만나서 한글 익히기부터 글 쓰는 힘을 기르기까지 거북이의 걸음처럼 꾸준히 나아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이 제한된 때에 우리는 잠깐 2주 정도 쉰 적은 있지만, 서로 마스크를 끼고 연필과 지우개를 부지런히 움직여 여기까지 왔다. 그는 얼마 전에 나와 음악 감상문을 써야 할 때가 있었는데, 어떤 음악이 생각나는지부터 하다 보니 나는 그를 위해 즉흥적으로 피아노도 쳐주고 그가 학교에서 같은 곡을 열 번 넘게 연습하여 머리가 매우 아팠다는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들었다. (그가 즉흥적으로 떠올린 곡은 '퍼프와 재키'로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팝송이라고 한다. 바다에 사는 용에 관한 이야기란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동안 오롯이 수업하는 일정이라 내가 우영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4년 동안의 꾸준한 만남이 서로 간의 서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는 웬만한 글에 자신의 생각을 넣어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그의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과 교육 상담을 하면 국어만큼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번에 그가 도전할 글의 장르는 '음악 감상문'인데 아직 정식적으로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글쓰기 근육을 길러봄으로써 '퍼프와 재키'를 실로폰으로 연주한 그의 경험담을 원고지에 잘 담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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