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 시민권자 소녀
처음에 지수 수업을 의뢰받고 상담차 처음 만났을 때 부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말하다 보니 부산 말투가 아닌 데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도 아니었다. 나중에 지수의 어머니께서 뉴질랜드 시민권자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수는 만난 날부터 매우 활달하고 언제 수업할지 엄청난 관심을 보여서 내가 몸 둘 바를 몰랐던 아이다. 한국 나이로는 초등 1학년이지만 한글 애플리케이션으로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한글을 다 마스터했다고 해서 더더욱 놀랐다. 한국 학생들은 정말 지수를 본받아야 한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 공부 때문에 학부모님들의 걱정이 많은데, 이 학생은 스스로 다 알아서 하니 대견하고 놀라울 수밖에 없다. 1월 말에 호주로 출국할 예정이라 부산에서 한 달간 여유가 있어서 직접 만나 일주일에 두 번 1시간씩 전체 문법 수업을 주로 했다. 그녀의 언니와 더불어 한국어는 잘하는데 해외에 오래 있다 보니 글자는 읽어도 뜻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아 나에게 한글 수업을 의뢰하게 되었다.
경이로운 만남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그녀는 한글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미 글자를 다 마스터했다. 발음도 좋고 읽기 능력도 좋다. 게다가 아직 소근육이 다 발달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글씨를 쓰는 힘이 엄청나다. 자음 쓰기 순서가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올바른 순서를 알려주면 스스로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이 정도면 학생에게 필요한 내용을 가르쳐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복잡한 모음 'AE, EA' 구분부터 시작했다. 한국인들도 'AE, EA' 모음은 책을 읽으면서 철자를 구분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일일이 구분하려면 너무 어려워서 각 모음의 대표적인 단어들로 맞춤법을 익혔다. 가로세로 낱말퍼즐도 하고 끝말잇기도 하면서 익숙한 단어들의 맞춤법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지수도 다른 학생들처럼 'wording-up' 교재를 정말 좋아한다. 그중에 단연 인기는 '끝말잇기' 활동이다. 그녀는 1주 차는 거뜬히 해나가면서 도무지 지칠 줄을 모른다. 1시간을 꽉 채워도 더 하자고 하니 지수의 어머니께서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셨다. 학생과 소통하면서 가장 크게 웃었던 적이 있었는데, 워딩업 교재의 장점을 직접 평가하는 멘트였다. "이 책이 참 잘 돼 있어요. 재미있고 다양하게 반복할 수 있어서 공부가 재밌어요." 이제까지 워딩업으로 수없이 수업해 보았지만 이렇게 평가하는 학생은 처음 봤다.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운 학생이다! 그리고 첫날에 '주야장천(All day)'이라는 한자성어를 알려줬는데, 한국인들은 '주구장창'으로 더 많이 쓴다고 가르쳐줬다. 자연스럽게 언급된 건데, 이 아이가 궁금해해서 차근차근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주구장창'은 잘못된 표현인데 재밌는 느낌이어서 알면서도 흔하게 쓰인다. 그녀도 알고 싶어서 또박또박 여러 번 발음했던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지수가 귀여워서 때때로 '지수 자매님'으로 부르며 장난친 것도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호주에서 재회하기로 약속
나는 지난 12월 말부터 1월 중순까지 자매들이 쓸 교재를 틈틈이 구성하느라 매우 바빴다. 다른 학생들도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휴일에도 계속 일을 하여, 결국 1년 치 남짓한 분량의 교재들을 다 완성했다. 무슨 사정으로 호주에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지수는 가기를 무서워하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호주는 뉴질랜드보다 동물과 벌레가 더 많아서 특히 뱀이 집의 벽을 뚫고 들어온다고 한다. 이 말이 정말인지 주변 코치님들께 물어봤는데, 대자연의 나라여서 그런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들었다. 2월에 해외 수업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이사한다고 정신이 없을 테니 다시 연락 받을 때까지 잠잠히 기다려야지. 한국 초등학교 1학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으로 공부하면서 때로는 어려웠지만 때로는 한 교재를 마칠 때 큰 성취감을 느끼며 기뻐했던 모습들이 이제는 추억이다. 언니 지아의 수업이 마칠 때까지 지수의 모습이 어찌나 간절하게 기다리던지 마칠 때쯤에 슬금슬금 나와서 어떻게 하는지 보러 오는 등 이렇게 학습을 하고 싶어 했던 학생은 정말로 드물다. 언니랑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지아를 왜 그렇게 의식했는지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다시 한번 한국 학생들은 분발해야 함을 느낀다. 학습하기를 좋아하니 그녀의 나머지 태도들은 자연스레 모범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국내외 한국어 및 독서논술코칭수업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등학생 서현이의 글자 맞춤법 점검과 성취 (0) | 2023.02.02 |
---|---|
두구동 소년 민준이 독서논술 활동과 그의 성향 (0) | 2023.02.02 |
이스라엘 Noam과 한국어 코칭 및 후기 (0) | 2023.02.02 |
9살 찬영과의 복잡한 한글 모음 공부와 느낀 점 (0) | 2023.01.28 |
멕시코에 사는 한국인 남학생과의 해외독서논술 수업 소감 (0) | 2023.01.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