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살 찬영이
찬영이는 내가 지도하는 학생 중에 가~~ 장 가까이에 거주하는 학생이다. 운동삼아 걷기에 괜찮은 위치이다. 처음 만났을 때 활발해서 앞으로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그는 한글을 읽는 건 잘하는데, 쓰는 것에서 너무 못한다. 게다가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이 거의 끝나가는데 아직도 글자를 배우고 있다니 선생님인 나는 너무나도 답답하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그가 말할 때 발음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여러 가지 방법을 모두 동원해도 찬영이가 거의 제자리걸음이라 요즘은 글씨를 힘 있게 쓰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넘어간다. 이 수업을 할 때는 작년이었는데, 기본모음을 다 익히고 모음 '이'를 기둥처럼 붙여 복잡한 모음들을 공부할 때였다. 그에게 모음 '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글자가 결혼하는 것에 비유하여 쉽게 알려주었고 바뀌는 자음에 따라 소리도 달라지는 것도 가르쳤다. 복잡한 모음의 후반부로 갈수록 글자는 되지만 아무 뜻이 없는 죽은 글자들이 많아지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기억해야 할 문자들이 적어지니까. 그나마 자주 쓰이는 글자는 <걔,얘,쟤>이다. 영어로 옮기면 the child(걔), this child(얘), that child(쟤)가 되겠다.
복잡한 한글 모음 공부
한글 모음 중에 다른 모음과 합쳐져서 글자를 이루는 것들이 있다. 이것을 '복잡한 모음'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부분을 어려워하는데, 단어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나는 일일이 외우라고 지도하지 않는다. 그저 책을 보면서 그들 스스로 복잡한 모음이 들어가는 문자와 단어의 뜻을 구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찬영이는 이 수준에 이르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일단 그는! 말하는 것부터 문제가 많다. 그의 발음이 다 새고 특히 '근데 이거'를 무수히 반복하니 나는 도대체 찬영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에게 쉬운 내용만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에게 쉬운 내용이면 남들에게는 훨씬 쉬운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쉬운 것을 배울 때는 표정이 밝다. 그런데 찬영이에게는 쉬운 내용이 어려운 것이다. 특히 내가 이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 나는 학습코칭 선생님이어서 최악의 상황일 때도 학생을 믿어줘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이 고민을 동료 선생님들께 털어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리 못하는 학생이어도 찬영이보다 학습적 성장이 느린 학생을 본 적이 없다. 한 여자 선생님께서 찬영이의 사진을 보시더니 '그의 글씨는 아주 또박또박 힘있게 적네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찬영이의 실력 향상이 더딘 이유는 뇌가 느려서 그래요. 그가 힘 있게 적는 글씨를 주로 칭찬해 주시고 그의 틀린 글자는 그냥 넘어가세요. 그게 코치님을 위한 현명한 방법이에요.' 조언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요즘에 찬영이에게 받아쓰기 테스트를 하면서 소리를 듣고 글자를 생각하여 적도록 지도한다. 그의 골치가 아플지라도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었다.
느낀 점
수업하시는 동료 코치님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꼭! 어려운 학생들이 한 명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분은 '느린 학습자의 선생님'이라고 스스로를 칭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틱 장애가 있는 학생을 맡아 분위기가 좋은 방향으로 이끄시면서 수업 태도를 전혀 다르게 바꿔놓기도 한다. 나는 이에 비하면 정말 좋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만난 것인데도 금요일만 되면 힘들다! 내가 봤을 때 찬영이는 다른 학생들이 한 번 배울 때, 같은 내용을 최소 열 번 이상은 반복을 해야 익힐까 말까 한 인지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와 함께 글자판으로 글자도 만들어보고, 돌림판으로 조합도 해보고, 빙고도 해보고, 교과서 필사도 해보는 등 이 학생에 맞춰 흥미롭게 할 수 있는 활동은 다 해봤는데 아직도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주 엄격하게 구는 나를 좋아해 주는 그를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늘어도 너무 늘지 않고 그의 부모님께도 면목이 없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혼내는 쪽으로 습관을 들이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가다듬어서 실력은 신경 쓰지 말고 그를 격려하는 쪽으로 지도해 봐야겠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잘 안 된다는 것!! 이 학생도 그의 머릿속에서 파이프 라인이 신속하게 연결되는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을 언젠가는 하게 되겠지?! 제발 그렇게 된다면 나는 찬영이를 끌어안은 상태에서 그와 기쁨의 춤을 출 것 같은데 말이야.
'국내외 한국어 및 독서논술코칭수업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등학생 서현이의 글자 맞춤법 점검과 성취 (0) | 2023.02.02 |
---|---|
두구동 소년 민준이 독서논술 활동과 그의 성향 (0) | 2023.02.02 |
이스라엘 Noam과 한국어 코칭 및 후기 (0) | 2023.02.02 |
뉴질랜드 시민권자 소녀와의 경이로운 만남과 호주 재회 약속 (0) | 2023.01.27 |
멕시코에 사는 한국인 남학생과의 해외독서논술 수업 소감 (0) | 2023.01.22 |
댓글